삶의 현장

사장나무 2022. 6. 13. 08:00

아침이

병원 마당에 핀
촉규화라고도 불리우는
접시꽃을 보니
문득
도종환 시인의
'접시꽃당신' 을 검색해 봅니다.

​*접시꽃의 꽃말은 애절한 사랑이라지요 
아내의 죽음을 앞둔
아픔과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시

<접시꽃당신>
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.
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
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
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
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
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

백운요양병원 화당에 핀 접시꽃(2022.06.13.월)

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 
아직 많은 날들을 기다려야하고
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 
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
논두렁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
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

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
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
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줄일 줄 모르고
약한 얼굴 한번 짖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
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
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
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

양림동 예배당 마당에 핀 접시꽃(2022.06.13)

처음엔 접시꽃같은 당신을 생각하며
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
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
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 
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,
부끄럼없이 살아가야한다는 마지막말씀으로
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

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 
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
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
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
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
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
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
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
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

백운요양병원 옥상정원에 핀 장미(2022.06.01)


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
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
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
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 
뿌듯이 주고 갑시다
기꺼이 삶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 
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
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
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
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
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

환하게 반겨주는 접시꽃을 보고
접시꽃당신의 의미를 되새기며
사랑하는 사람들과
지금이 행복할 수 있는
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  
소망해  봅니다

'도종환' 시인의 <접시꽃 당신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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